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큐 왕국 (문단 편집) == 종교 == 류큐에서는 류큐의 전통 신앙인 [[류큐 신토]]를 믿어왔다. 류큐 왕국 정부는 신녀인 노로(ノロ)의 조직을 관리하였으며, 최상위 노로인 기코에오키미(聞得大君)는 왕족 여성이 임명되었다. 노로 이외에도 개인이나 마을을 위해 일하는 무당인 유타(ユタ), 남성 점쟁이인 도키(トキ)도 있었다. 17세기 무렵에는 유타와 도키가 반란을 일으키자 탄압하였다. [[불교]]는 13세기에 전해졌으며, [[슈리성]] 옆의 엔가쿠지(円覚寺)에서는 [[조선]]에서 받아온 [[팔만대장경]] 인본을 보관하고 있었다. 조선에서 불교가 푸대접받는 틈을 타 대장경 본판을 받아가려고도 했으나 무산되었던 듯하다. 엔가구치의 장경은 사쓰마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. 대형 사찰인 소겐지(崇元寺)가 류큐 왕실의 종묘 역할을 하는 등 왕실에서는 대우받았지만, 일본 본토에서와 같이 민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했다. 다만 [[미륵]] 신앙이 민간신앙과 융합하는 등의 영향을 끼쳤다. 일본 본토의 [[신토]] 또한 건너왔는데, 영향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[[신사]]가 절 옆에 부속되어 지어진다든가 하는 영향을 주었다. 일부 [[신토]]의 신들은 오키나와의 신으로 토착화 되기도 했다. 류큐 왕국 시절에 세워진 여덟 개의 주요한 신사를 류큐팔사(琉球八社)라고 한다. 류큐팔사 가운데 일곱 곳은 쿠마노곤겐(熊野権現)을 신으로 모시는데, 이는 류큐가 불교를 들여올 때 영향을 준 사찰이 [[키이]]지방에 많았기에([[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]] 참고) 그 지역의 신이었던 쿠마노곤겐 신앙이 따라서 들어왔기 때문이다. [[유교]]는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, 사대부 계층의 기본 소양이었다. [[나하시]]에는 지성묘(至聖廟)가 세워져 [[공자]]에게 제사를 지냈으며, 명륜당(明倫堂)에서 유교 경전을 교육했다. 민간에도 영향을 끼쳐서 오키나와에 문중(門中) 문화가 확산되는 등의 영향을 끼쳤다. [[도교]]는 정확히 전해지는 시기를 알 수 없지만 18세기에 부뚜막 축제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. 이후 류큐 토착 민간 신앙과 융합하여 부녀자 사이에서 널리 믿기도 했다. 1624년에 [[야에야마 제도]]에 스페인 신부가 표류해와서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했는데, 1634년에 [[사츠마 번]]의 명령으로 신부와 신자들이 처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